“순수한 냉소주의는 인간들의 멍청함 앞에서, 다시 말해 자신들의 가치가 반석처럼 견고하다고 굳게 믿는 인간들의 어리석음 앞에서, 허탈한 웃음이 발작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악마에게 가치는 위선에 불과할 뿐이므로 가치를 파괴하려 한다. (중략) 인간 실존의 역겨운 충만성과 자신의 견고함에 대한 인간의 독선적 믿음은 악마의 냉소와 분노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악마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들과 보들레르식으로 비밀협정을 맺는다.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은 악마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둔감한 오만을 비웃는다. 악마는 가치를 미묘하고 용의주도하게 조정하는 세계를 평가절하하면서 개성적 정체성들을 파괴하여 무의미의 영원한 획일성으로 만든다. 악마는 천사의 유일무이한 아우라를 없애고 무한한 기계적 복제에 열중한다. 쿤데라에게 기계적 복제의 모범은 성적 탐닉이다. 무수한 거울들을 통해 끝없이 반복될 뿐인 성애가 하나같이 독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웃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쿤데라에게 민망한 나체들이 똑같은 공간에 빼곡하게 들어찬 광경은 가스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존재의 유일무이함은 분명 허구적 물신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대상이 획일적으로 교환가능하다는 냉소적인 주장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중략) 우리는 의미과잉과 의미결핍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고 있는데, 너무 악마적이거나 너무 천사 같은 두 상태는 서로에 대한 거울 이미지다. 예컨대 사회는 악마성의 틈을 메우기 위해 천사적 성질을 필요로 한다. 천사의 영역-혹은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우리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인정한다. <나는 윌리 로먼이고 너는 비프 로먼이야!> 그러나 시장의 영역에서 개인들이란 무가치한 동질성일 뿐으로 서로 무차별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 <아버지, 전 열두 개에 일 달러짜리 싸구려에요, 아버지도 그렇고요!>”-테리 이글턴, 『우리 시대의 비극론』, 452-453쪽.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악마숭배를 충동질 하는 시대이다. 착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삶의 충만함과 개체의 소중함을 말할 때, 우리는 공허하고 심지어 역겹다고 느낀다. 천사 같은 모습으로 예쁘게 말하는 사람은 우리의 비천함과 남루함을 먹고 행복해 하는 것이다. 어쭙잖은 희망을 말하기보다는 절망스런 사회를 욕하는 것이 훨씬 ‘쿨’하다고 생각한다. 존재의 소중함은 어른들이 흔히 말하듯이, ‘있어야 대접받는 세상’에서 무용지물이다. 솔직한 악마가 차라리 믿음이 간다. 하지만 악마를 숭배한다고 해서 ‘의미없음’을 받아들일 용기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는 삶을 파괴함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교활한 방식으로 외설적 쾌감에 빠져든다. 우리는 의미과잉과 의미결핍 사이에서 방황한다. 천사도 악마도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 2010/11/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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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천사와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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